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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삼국시대에 형성된 대규모 고분군으로 현재 3군데 지정되어 있다. 1991년과 1993년의 발굴조사 결과 돌덧널무덤, 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구동식돌방무덤, 굴식돌방무덤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여러 종류의 토기, 둥근머리큰칼 등의 무기, 철판갑옷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장류가 다량 수습되었다.




왜구가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침입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722년(신라 성덕왕 21년)에 돌로 쌓은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각간 원진이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모벌군성, 모벌관문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문성이라고 한 것은 이 성이 경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성을 만리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생활유적은 동대산(해발 444m)에서 동천 방향(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일대에 분포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3차례의 시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삼국시대 구덩이 및 고분, 숯가마, 고려시대 분묘, 조선시대 숯가마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매장문화재가 이곳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매곡동 생활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자빨간등대는 정자활어회센터의 끝자락 방파제 위에 우뚝 서있다. 회색빛 방파제 위에 빨간색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멀리로는 멸치잡이 배의 고동이 울리고 방파제 위에 늘어선 꾼들의 침묵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이곳에서의 바다의 해돋이는 동해의 추암 일출이나 남해의 항일망 일출 못지않은 감명을 느낄 수 있다.




봉수대는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인근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여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과 해당 진영에 알리던, 옛날 군사 통신 수단의 하나이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제도인 듯하나, 그 체제가 정비된 것은 조선 세종 때였다.




무룡산은 해발 452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울산도심을 끼고 동해다와 연결해 있어 정산에서의 경치는 일품이다.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으로 옛부터 지방의 수호산으로 추앙받고 있다.